이 글의 목차
마트 앞에서 멈추는 질문
틀 하나: 선행 · 유발 · 매개
선행요인 — 출발선에 무엇이 놓였나
유발요인 — 무엇이 방향을 틀었나
매개요인 — 결과물에 무엇이 남았나
유당이라는 사례, 그리고 개인차
이 틀이 답하지 못하는 것
정리
마트 유제품 코너 앞에서 한 번쯤 멈춰본 적 있으실 겁니다. 포장마다 ‘유산균’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데, 그래서 어떤 걸 집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는 순간. 발효식품이 몸에 좋다는 말은 충분히 들었지만, 그 말이 눈앞의 선택으로 번역되지 않습니다.
번역이 안 되는 이유는 우리가 발효식품을 하나의 덩어리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발효됐다 / 안 됐다’는 두 칸짜리 분류로는 같은 칸에 들어간 것들 사이의 차이를 볼 수 없습니다. 칸을 더 나눠야 선택이 가능해집니다.
마침 그 칸을 나눠준 자료가 있습니다. 2026년 ACS Food Science & Technology에 실린 영국 레딩대 연구인데, 아티산 치즈 세 종을 숙성 단계마다 샘플링해 미생물과 생화학 성분의 변화를 추적했습니다. 오늘 이 글은 그 데이터를 기능의학이 쓰는 시스템 틀 위에 올려놓고 읽어보려 합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이건 치즈를 먹여본 연구가 아니라 치즈를 분석한 연구입니다. 그 점은 뒤에서 다시 짚겠습니다.

틀 하나: 선행 · 유발 · 매개
기능의학에서는 어떤 상태를 볼 때 원인을 한 덩어리로 묻지 않고 세 층으로 나눕니다. 애초에 깔려 있던 조건(선행요인), 방향을 바꾼 사건(유발요인), 그리고 지금 상태를 계속 유지시키는 요소(매개요인). 사람의 몸을 볼 때 쓰는 틀이지만, 무언가가 ‘지금 이 상태’에 도착하는 과정을 읽을 때는 대체로 잘 들어맞습니다.
치즈도 과정을 거쳐 지금 상태에 도착한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세 층으로 나누면 포장지 문구보다 훨씬 많은 것이 보입니다.
선행요인 — 출발선에 무엇이 놓였나
원유와 종균입니다. 어떤 우유로 시작했고 어떤 균을 넣었는가.
레딩대 연구에서 분석한 세 치즈 — 소프트 화이트 린드, 워시드 린드 세미소프트, 건초 숙성 세미하드 — 는 모두에서 Streptococcus thermophilus와 Lactococcus lactis가 확인됐습니다. 프로바이오틱 잠재력이 있다고 알려진 균들이죠.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우리가 마트 앞에서 겪던 그 막막함으로 되돌아갑니다. 세 치즈가 공통으로 가진 것이니까요. 공통항은 선택의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차이를 만든 건 다음 층입니다.
유발요인 — 무엇이 방향을 틀었나
숙성 방식입니다. 표면을 씻느냐, 흰 곰팡이를 올리느냐, 건초 속에서 익히느냐. 온도와 습도, 시간.
이 층에서 세 치즈는 완전히 갈라졌습니다. 건초 숙성 세미하드 치즈는 완전 숙성 시점에서 세균 종 다양성이 약 4배 높았습니다. 출발선의 균 구성이 겹쳐도, 익히는 조건이 다르면 도착 지점이 이만큼 벌어진다는 뜻입니다.
발효식품을 고를 때 우리가 실제로 볼 수 있는 정보 중 가장 정보량이 많은 칸이 여기라고 생각합니다. ‘유산균 함유’는 거의 모든 제품에 붙지만, 어떻게 얼마나 익혔는지는 제품마다 다르고 그 차이가 결과를 갈랐으니까요.
매개요인 — 결과물에 무엇이 남았나
미생물이 만들어낸 대사산물입니다. 균 자체보다 균이 남긴 것.
워시드 린드와 건초 숙성 쪽에서는 Propionibacterium freudenreichii가 검출됐습니다. 이 균이 내놓는 프로피온산은 단쇄지방산의 하나로, 염증 조절과 콜레스테롤 대사 쪽에서 꾸준히 거론돼 온 물질입니다. 소프트 화이트 린드 쪽은 표면의 Penicillium candidum이 만드는 키틴이 프리바이오틱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언급됐습니다 — 가능성까지입니다.
균이 아니라 균이 남긴 물질을 본다는 관점은 요즘 장 건강 논의의 중심으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을 장 건강과 부티레이트에서 한 번 다뤘고, 단쇄지방산 자체는 포스트바이오틱스와 단쇄지방산에 정리해뒀습니다.
유당이라는 사례, 그리고 개인차
세 층으로 나눠 보면 유당 이야기도 다르게 읽힙니다.
숙성이 완료된 치즈에서는 유당이 거의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건 치즈에 유당이 원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숙성이라는 유발요인이 작동하면서 미생물이 그것을 대사해 없앤 결과입니다. 말하자면 유당이 빠진 게 아니라 쓰인 겁니다.
우유는 부담스러운데 오래 익힌 치즈는 괜찮더라는 경험이 왜 나오는지, 이 지점이 설명해 줍니다. 유제품을 전부 피하던 분에게는 생각해볼 여지가 생기는 정보죠.
다만 두 가지는 꼭 함께 두셨으면 합니다. 첫째, 숙성 정도는 제품마다 다릅니다. 이름이 같아도 얼마나 익혔는지에 따라 남은 유당의 양이 달라집니다. 둘째, 반응의 폭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잔여 유당이 거의 없어도 유제품 단백질 쪽에 반응하는 경우가 있고, 한 번에 먹는 양이나 지방 함량이 변수가 되기도 합니다. 적은 양에서 시작해 본인의 반응을 확인하는 순서가 안전하고, 진단을 받은 상태라면 그 판단에는 의료진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이 틀이 답하지 못하는 것
정직하게 적겠습니다. 오늘 쓴 시스템 틀은 치즈 쪽에만 적용됐습니다. 사람 쪽에는 아직 닿지 않았습니다.
이 연구는 치즈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봤을 뿐, 사람이 그 치즈를 먹었을 때 장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는 보지 않았습니다. 섭취 시험도 없었고 대조군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숙성 치즈가 장을 좋게 한다”는 문장은 지금 단계에서 쓸 수 없는 문장입니다. 쓸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 숙성 방식이 치즈 안의 미생물과 대사산물 구성을 실제로 바꾸며, 그래서 장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볼 가치가 있는 후보가 된다.
이 틀의 쓸모는 그래서 ‘치즈를 먹어야 할 이유’가 아니라 ‘발효식품을 분류하는 해상도’에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발효식품을 보든 출발 재료, 발효·숙성 조건, 남은 대사산물 — 이 세 칸으로 나눠보시면 포장지 문구 한 줄보다 훨씬 많은 것이 보일 겁니다.
정리
세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 발효식품을 ‘유산균 유무’로 나누면 선택이 안 되지만, 선행요인(원유·종균)·유발요인(숙성 방식)·매개요인(대사산물)으로 나누면 차이가 보입니다.
- 실제로 세 치즈는 공통 균을 공유하면서도 숙성 방식에 따라 갈렸고, 건초 숙성 치즈는 완전 숙성 시 세균 종 다양성이 약 4배 높았으며 숙성이 끝난 치즈에서는 유당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 단, 이 연구는 치즈를 분석했을 뿐 사람에게 먹여 확인하지 않았으므로 건강 효과는 가설 단계이고, 유당 반응은 숙성 정도와 개인차에 따라 달라집니다.
참고 문헌
- 영국 아티산 치즈 3종의 숙성 단계별 미생물·생화학 특성 분석. ACS Food Science & Technology. 2026. doi:10.1021/acsfoodscitech.5c01243
- 관련 보도: University of Reading, ScienceDaily, 2026년 8월 16일. <https://www.sciencedaily.com/releases/2026/08/260816044847.htm>
이 글은 건강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상태에 따라 필요한 조치는 다르므로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최종 수정일: 2026년 9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