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목차 1. 이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2. 무엇이 실제로 달라졌나 3. 글루텐은 정말 늘었을까 — 120년치를 비교한 연구 4. 더 크게 달라진 것은 제분이었습니다 5. 농약과 생장조절제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6. 정리

이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요즘 밀은 예전 밀이랑 다르대요.”
강의에서든 상담에서든 이 말을 자주 듣습니다. 대체로 이런 이야기가 따라붙습니다. 품종을 개량하면서 글루텐이 훨씬 많아졌고, 그래서 예전에는 없던 밀 소화 문제가 지금은 흔해졌다는 것입니다.
밀은 인류가 가장 오래 먹어온 곡물 중 하나입니다. 그런 곡물이 한 세기 만에 달라졌다면 짚어볼 만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는 직접 확인한 연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통념과 상당히 달랐습니다.
무엇이 실제로 달라졌나
먼저 사실인 부분부터 정리하겠습니다. 밀 품종은 분명히 바뀌었습니다.
1960년대를 지나며 전 세계 밀 재배는 반왜성(半矮性) 품종으로 크게 옮겨갔습니다. 키가 작은 품종입니다. 키를 낮춘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삭이 무거워지면 키 큰 밀은 쓰러지는데, 키가 작으면 버팁니다. 그만큼 비료를 더 주고 수확량을 늘릴 수 있습니다.
이 전환을 주도한 인물이 노먼 볼로그(Norman Borlaug)이고, 흔히 녹색혁명이라 부릅니다. 수억 명분의 식량 생산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러니 “요즘 밀은 예전 밀과 다르다”는 말 자체는 맞습니다. 품종이 바뀌었으니까요.
문제는 그다음 문장입니다. 품종이 바뀌었으니 글루텐도 늘었을 것이다 — 이건 별개의 주장이고,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글루텐은 정말 늘었을까 — 120년치를 비교한 연구
독일 라이프니츠 식품시스템생물학연구소가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방법이 깔끔합니다. 189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 단위로 그 시대의 주력 품종 5개씩 골라 총 60개 품종을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이 60개를 같은 밭에서 같은 조건으로 함께 재배했습니다.
이 설계가 중요합니다. 옛날 밀과 지금 밀을 그냥 비교하면 토양도 기후도 다르니 무엇 때문에 차이가 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같은 조건에서 키워야 품종 자체의 차이만 남습니다.
결과입니다.
| 항목 | 120년간 변화 |
|---|---|
| 단백질 총량 | 현대 품종이 오히려 조금 적음 |
| 글루텐 총량 | 변화 없음 |
| 글리아딘 | 약 18% 감소 |
| 글루테닌 | 약 25% 증가 |
글루텐은 크게 글리아딘과 글루테닌으로 나뉩니다. 소화 문제와 관련해 더 자주 언급되는 쪽은 글리아딘인데, 이 성분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연구진은 품종 개량으로 밀의 면역반응 유발 가능성이 달라졌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정리했습니다. 오히려 단백질 조성에 더 크게 영향을 준 것은 품종이 아니라 수확기 강수량 같은 환경 조건이었습니다.
즉, “품종이 바뀌어서 글루텐이 늘었다”는 설명은 이 데이터로는 지지되지 않습니다.
밀을 먹고 불편을 겪는 분들이 실제로 계시고, 그 경험이 없는 일이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그 원인을 “요즘 밀의 글루텐이 늘어서”로 설명하는 것은 근거와 맞지 않습니다. 원인은 다른 곳을 봐야 합니다.
더 크게 달라진 것은 제분이었습니다
품종보다 훨씬 크게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밀을 가루로 만드는 방식입니다.
원래 밀가루는 두 개의 큰 돌 사이에서 갈아 만들었습니다. 이 방식으로는 알갱이 전체가 그대로 가루가 됩니다. 겨도 배아도 함께 들어갑니다.
1870년대를 지나며 롤러 제분이 보급되면서 상황이 바뀝니다. 이 방식은 알갱이를 부위별로 분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분리했습니다.
밀알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 부위 | 들어 있는 것 | 정제 시 |
|---|---|---|
| 겨(bran) | 식이섬유, 미네랄, B군 비타민 | 제거 |
| 배아(germ) | 지방, 비타민 E, B군 | 제거 |
| 배유(endosperm) | 전분, 단백질 | 남김 |
영양이 가장 몰려 있는 두 부위가 빠지고, 전분 위주의 부위만 남습니다.
왜 뺐을까요. 배아에는 지방이 들어 있고, 지방은 산패합니다. 배아를 남겨두면 밀가루가 몇 달을 못 갑니다. 겨와 배아를 걷어내면 보관 기간이 크게 늘어납니다.
유통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식이섬유와 미량영양소가 빠졌습니다.
품종 개량은 글루텐을 바꾸지 않았지만, 제분 방식은 밀가루의 영양 구성을 확실히 바꿨습니다. 밀에 관해 이야기할 때 실제로 짚어야 할 지점은 여기입니다.
정제된 곡물이 왜 다르게 작용하는지는 혈당 반응과도 이어집니다. → 같은 음식인데 왜 사람마다 혈당이 다를까
농약과 생장조절제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밀 이야기에는 재배 과정의 화학물질도 자주 함께 등장합니다. 이 부분은 사실과 과장을 나누어 읽어야 합니다.
클로르메쿼트(chlormequat) 는 실제로 존재하는 생장조절제입니다. 밀의 키를 낮춰 쓰러짐을 막는 용도로 유럽 등지에서 쓰입니다. 2024년 미국에서 진행된 파일럿 연구에서 성인 소변 검체의 상당수에서 이 물질이 검출되어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 검출되었다는 것과 건강에 해를 끼쳤다는 것은 다른 층위의 이야기입니다. 검출은 노출을 뜻하고, 노출의 양과 결과는 따로 따져야 합니다
- 흔히 함께 인용되는 생식 관련 우려는 동물 실험 수준의 근거입니다. 사람에게서 확인된 결과가 아닙니다
- 해당 연구 자체가 파일럿(예비) 연구이며, 저자들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농약 노출을 줄이는 선택은 충분히 합리적입니다. 다만 그 선택의 근거로 아직 확인되지 않은 질병 인과를 끌어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이 블로그에서는 이런 원칙을 지키려 합니다. “검출되었다”까지가 확인된 사실이면, 거기까지만 씁니다.
정리
세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 밀 품종은 확실히 바뀌었다. 다만 글루텐 총량은 120년간 변하지 않았고, 글리아딘은 오히려 줄었다
- 실제로 크게 달라진 것은 품종이 아니라 제분 방식이다. 겨와 배아가 빠지면서 식이섬유와 미량영양소가 함께 빠졌다
- 밀을 먹고 불편한 경험은 실재한다. 다만 그 원인을 검증되지 않은 설명으로 채우지 않는 편이 결국 도움이 된다
밀을 줄이거나 통곡물로 바꾸는 선택은 각자의 판단입니다. 다만 그 판단이 정확한 정보 위에서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참고 자료
- Leibniz-Institute for Food Systems Biology at the Technical University of Munich & Leibniz Institute of Plant Genetics and Crop Plant Research. 1891~2010년 밀 품종 60종의 단백질·글루텐 조성 비교 연구 (2020년 발표)
- Chlormequat in food and urine from adults in the United States from 2017 to 2023 (pilot study). Journal of Exposure Science & Environmental Epidemiology. 2024. doi:10.1038/s41370-024-00643-4
- Functional Nutrition Alliance, 곡물 관련 교육 자료
이 글은 건강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상태에 따라 필요한 조치는 다르므로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셀리악병이나 밀 알레르기로 진단받은 경우 식단은 반드시 의료진과 상의하세요.
최종 수정일: 2026년 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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